책을 시작하며...
왜 또 하나의 건선 전문 교재가 필요한가
건선은 주요 피부 질환 중 가장 급격한 발전을 보여준 분야이기 때문이다.
유병률도 중증도도 모두 높은 편이어서 피부 질환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질환인 건선은 기전의 이해와 치료 방법에 있어서 최근 20-30년 동안 가장 급격한 발전을 보였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면역억제제의 광범위한 사용, 생물학적 제제의 도입, 고효율의 광선 치료기 활용 등은 오랜 세월 동안 스테로이드, 항히스타민제, 항진균제 등의 제한된 치료법으로 많은 질환을 감당해야 했던 피부과 의사들에게 가슴 뛰는 도전 의식을 주기도 하지만 익숙해져야 할 지식의 양과 변화의 속도에 당황하게 되기도 한다.
피부과 의사가 미래에도 건선 치료의 주역으로 남기 위해서이다.
단순 피부 질환의 영역을 벗어나 다양한 질환이 동반되는 전신 질환으로 그 개념이 확장되고 있는 건선 치료에 있어 피부과 의사가 앞으로도 주도적인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치료 역량을 갖춘 건선 전문가를 지속적으로 양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상황은 결코 녹녹해 보이지 않는다. 최근 대한건선학회에서 조사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건선 전문가 양성을 위한 수련 병원의 상황은 매우 열악해 보이며 관련 학회를 통한 일회성 교육 역시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다. 건선의 병인론에 대한 지식 중심 교육과 임상 특성에 대한 진료실 내의 수련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쏟아져 나오는 치료제를 숙지하고 단순 피부 질환의 영역을 넘어서는 건선의 질병 개념을 잘 포괄하는 치료 전략과 치료 접근법을 세울 수 있는 건선 치료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갖추기에는 현재의 수련 환경은 역부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치료 중심, 실전 중심의 교재가 드물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건선 치료 전문가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좋은 멘토와 임상 환경 그리고 훌륭한 지침서가 필요하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나는 것은 실전 상황이며 개별 환자마다 독특한 질병 특성과 개인의 상황이 주어지므로 이에 맞는 최적의 치료를 찾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치료 전략이 있어야 하고 치료제의 개별 특성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건선 관련 서적들이 다양한 치료제에 대한 백과사전 식의 나열적 소개를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이는 식재료만 던져주고 오늘 저녁 파티를 준비해보라고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이 책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책은 임상적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선 치료 과정에서 마주치는 문제를 127개의 문항을 통해 질문화하고 이에 대한 합리적이면서도 되도록 근거를 가진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적절한 치료 방법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치료와 관련된 질문은 건선의 기전과 개별 치료 방법 및 치료제의 특성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이 책은 개별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가 어떤 것인지를 선택하기 위한 논리적 접근 방법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별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는 개별 환자의 중증도, 판의 유형, 발생 부위 등에 따른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개별 치료제나 치료 방법의 교과서식 나열을 되도록 피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경구용 약제를 나열하고 구조식, 약동학, 약력학, 기전, 용량, 효과, 부작용, 주의 사항 등을 기술하는 방식은 어느 정도 필요하며 본 책자도 이런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그렇지만 적절한 치료법에 이르기 위해 ‘언제, ‘어느 부위에, 어떤 치료법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 방식을 통해 그것이 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가를 설명하는 것에 더 치중하고자 하였다.
이 책은 단순한 치료제를 넘어 치료 전략, 접근법, 순응도 제고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다.
건선 환자를 한 번 보고 돌려보낼 의사보다는 10년, 20년 장기적인 치료를 통해 치료의 파트너가 될 의사에게 꼭 필요한 치료 전략과 치료 접근법 등을 제시한다. 전략과 접근법은 한 가지 정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 특성과 그 질병을 바라보는 의사의 시각의 어루어짐 속에서 만들어지므로 다분히 주관적이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런 요소를 기술한 이유는 건선과 같은 다층성, 유병률, 중증도를 보이는 질환을 제대로 진료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전략과 접근법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는 저자의 신념 때문이다. 앞으로 기탄 없는 독자들의 의견 개진과 집단 지성을 통해 더욱 다양하고 완성도 높은 전략과 접근법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은 누구를 독자로 하는가?
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이 책은 건선 치료에 관심이 있는 피부과 의사를 주요 대상으로 집필되었다. 따라서 저년차 전공의가 건선 치료의 개념을 공부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으며 고년차 전공의가 실제로 자신의 단독 외래를 담당하면서 건선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주 교재로 사용하면 매우 유용할 것이다. 또한 전임의 과정이나 개원한 피부과 전문의가 건선 환자를 더욱 깊이 있게 진료하고자 할 경우 유용한 참고서적이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가?
이 책은 건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판상 건선에 대한 재래식 치료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농포성 건선이나 홍피성 건선 등의 특수한 형태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으며 특수 부위에 발생한 판상 건선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다루었다. 주로 재래식 치료법을 다루었으며 생물학적제제나 small molecule peptide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다룰 예정이다. 재래식 치료방법의 경우에도 국내에서 흔히 사용하는 종류에 집중하였으며 개별 치료제보다는 해당 치료제가 속한 범주 혹은 치료 방법 전체에 관한 기술에 치중하였다.
이 책의 한계는 무엇인가?
이 책은 기본적으로 저자의 진료 경험이 근간을 이루고 여기에 학술 논문을 통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접목하여 저술되었다. 따라서 저자의 경험 폭에 의한 편향이 있을 수 있으며 되도록 객관성을 가지기 위해 관련 논문들을 많이 검토하고 포함하였으나 체계적 검토 방식을 통한 리뷰 논문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논문의 선정에서도 편향이 있을 수 있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최선의 치료법을 제시하려고 하였지만, 이 책의 내용대로 치료한다고 하여 반드시 그것이 개별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보장한다고 할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은 저자의 경험에 기초한 의견을 과학적 근거로 보완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감사의 글
졸저이지만 전문의로서 30년의 진료 경험이 담겨 있는 책을 쓰면서 그 시간이 소중한 인연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전공의 시절부터 건선이라는 병에 관심을 두게 해 주시고 이 길로 이끌어 주신 은사이신 윤재일 교수님께 가장 큰 감사를 드린다. 우리나라 건선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자 전문가이신 교수님께 지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진로를 모색 중이던 필자를 대한건선학회로 이끌어 주신 김낙인 교수님과의 인연도 참 소중하다. 대한건선학회 창립 멤버 윤재일, 김광중, 김낙인, 최지호, 김태윤 교수님들 덕분에 건선학회의 주요 보직을 통해 건선에 대한 시야가 넓어질 수 있었다. 모두가 소중한 멘토이자 롤 모델이 되어 주셨다.
진료를 영어로는 practice라고 한다. 최선의 진료는 best practice, 잘못된 진료는 malpractice라고 한다. 사실 practice는 실제, 실천 혹은 실습의 의미인데 강의실에서 배운 이론을 토대로 환자를 실제로 대하는 진료를 실습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의학이 평생 배우고 익히는 학문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환자는 치료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의사의 성장을 돕는 파트너이자 선생이 되기도 한다. 의사는 항상 환자를 통해 배우기 때문이다. 이 지면을 빌어서 한 명의 전문의에서 건선 전문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흔쾌히 본인을 믿고 맡겨 주셨던 환자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졸저의 출간을 결심하기까지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편집에 도움을 준 도서출판 대한의학 편집부 신은주 실장님, 서선영 과장님, 영업부 김호암 과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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