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나는 항상 사람이 저마다의 처한 환경에서 자기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으며, 이 사회에서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소중한 삶에서 순간 장애물이 생긴다면 각자 이루고자 하는 삶을 이룰 수 없으며 본인의 삶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안면마비란 질환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발견한 수만 가지의 질병 중 하나이지만 다른 질병과 매우 다른 특성이 있다. 2,000여 년 전부터 인류는 안면마비 현상을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 여겨 왔고 지금도 그 현상은 과학적인 접근보다는 비과학적 접근으로 이어가려는 무의식적 유전자가 존재하는 것을 의료 현실에서 느끼고 있다.
다른 질환과 차이 나는 특성 중 하나는 이 질환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 즉 사회와 나의 관계를 끊어 놓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하나하나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른 ‘얼굴’은 그 사람의 상징이며, 이는 얼굴이라는 한글로 된 단어 속에 함축이 되어 있다. 얼굴이라는 단어는 세종의 명에 따라 수양대군이 편찬한 「석보상절」이라는 책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얼은 영혼, 굴은 꼴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영혼, 정신의 형태 혹은 모양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즉 얼굴은 그 사람의 정신적 혹은 영혼적 정보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타인과 비언어적이고 고차원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이러한 특권을 안면마비란 질환이 무작위적으로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차이 나는 다른 특성은 수십 가지의 질병이 단 하나의 현상인 안면마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때로는 무지함보다 더 경계해야 하는 것은 오만과 우월감에 있다. 즉 예로부터 와사풍 혹은 구안와사로 알려진 안면마비 질환은 실은 여러 형태의 질병 중 하나의 현상일 수 있으나, 때로는 이를 너무 오만하게 판단하여 안면마비 치료의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경향이 있다. 막연하게 저절로 좋아진다거나 타인의 과거 경험을 비추어 환자를 판단하는 오만한 태도는 불완전 회복으로 이어져 환자의 삶을 망쳐 놓을 수 있는 위험이 있어 항상 이러한 무지함을 경계해야 한다.
세 번째로 차이 나는 특성은 여러 전문가의 협업이 요구되는 질환이다. 안면신경은 대뇌피질에서 시작되어 뇌간에서 나와 측두골을 지나 두개골을 나오면 이하선을 지나 22개의 안면 근육에 분포하게 된다. 이러한 긴 구간을 지나는 동안 안면신경은 여러 질환에 노출될 수 있어 각 부위별로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는 안면마비 질환의 치료에 국한되는 특성만은 아니다. 사람은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채 삶을 영위하고 있다. 나부터도 이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 내게 가르침을 주었던 여러 지혜로운 스승님(특히 지금은 고인이 되신 (故) 이원상 교수님)과 선배 의사들이 있었고, 현재는 재활의학과, 신경과, 마취통증의학과, 성형외과, 이비인후과 두경부 파트, 방사선과, 진단의학과, 병리학과 등의 여러 훌륭한 전문가들의 손길이 항상 살아 숨 쉬며 같이 움직이고 있다. 순간순간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옮은 선택은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준다.
나는 항상 사람이 저마다의 처한 환경에서 자기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으며, 이 사회에서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소중한 삶에서 순간 장애물이 생긴다 해도 의지의 힘에서는 무력할 수 있다. 그 의지는 이 특이한 안면마비란 질환을 가진 환자와 이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의사 모두 가져야 할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안면마비 질환에 대한 상식은 바꾸고, 신념을 지키고자 한다.
2020년 3월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이비인후과 김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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