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의료 국제화 시대입니다. 대기 환자 목록에 중국인, 일본인, 미국인이 있는 것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의료 한류 하면 중국인과 성형외과만 생각하게 되지만, 2013년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년에 한국에서 진료를 받은 일본인 환자수가 1만 7천 명 정도로 결코 적은 숫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최근 들어서 해외로 진출하는 의료 종사자의 수도 늘고 있습니다.
아픈 환자는 의료인을 배려할 수 없으므로 불편한 사항에 대해서 두서가 없고 일상 대화에 비해서 말이 굉장히 빨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빠른 속도의 일본어를 잘 들으면서도 그 내용의 요점을 파악하여 정리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의료진은 환자의 말을 들으며 한국의 차트인 일본의 ‘카르테(カルテ)’를 작성하려면 의학 용어에 관해서도 능통해야 하고, 그에 필요한 한자도 많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환자에 아픔을 이해하려면 공감 능력도 필요합니다. 또한, 의료인들은 지식인에 해당하므로 고급스러운 언어도 구사해야 합니다.
시중에는 수많은 일본어 회화 서적들이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환자에 대한 의료행위를 하려면 회화를 넘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것을 만족시킬 만한 서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의사이자 일본 의사 자격이 있는 두 명이 ‘우리가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 책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하면서 과연 이것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임했던 것 같습니다. 두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물론 의학 용어도 확인해야 하므로 어느 서적보다도 더 많은 정성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읽고 고치고 또 고치면서 조금씩 나아져 갔던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같이 집필에 임해주신 서동경 선생님과 북해도 덕수회 연수 부장님이신 中川
麗(나카가와 우라라)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출판에 선뜻 나서주신 대한의학서적 관계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무엇보다도 옆에서 지켜봐 주고 응원해준 가족과 아이가 있었기에, 1년이 다 되는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책을 완성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막상 책으로만 접하다가 처음 일본인 환자와 마주치게 되면, 그 동안 머리에 생생히 기억나는 문구들도 기억이 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자주 사용하였던 한자들도 긴장과 함께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주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읽고 말하고 쓰는 것을 반복한다면, 분명 일본인 환자의 아픔까지도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의료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반복이 기적을 만든다는 말을 믿으며, 이 책이 여러분들의 앞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홍 문 기
우리는 지금 세계화, 글로벌 시대라는 단어에서조차도 어딘가 모를 촌스러움과 과거의 냄새가 느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교통, 통신수단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큰 어려움 없이 세계와 소통할 수 있고, 약간의 시간과 노력만 들이면 못갈 곳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국에서 직업을 가지고 그 국가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단순히 여행하는 것과 비교해서 더욱 더 심도 있는 각오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여행이나 매체라는 여과과정 없이, 있는 그대로의 그 나라 국민, 문화, 풍조, 실상을 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겠다는 것은, 결심부터가 새로운 도전이자 모험이다.
이러한 도전과 모험의 첫발이자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언어가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최소한의 의사소통 수단의 기능만 하던 언어가, 그 나라의 문화나 사회를 오랜 시간 접함으로써 그 언어에 그것이 어떤 식으로 반영되는지, 즉 숨겨진 의미와 뉘앙스 등을 느끼고 비로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진부한 견해에 걸맞게, 언어에서도 그 견해가 상통한다. 지금은 각각 고립된 언어로 분류되고는 있지만, 과거에 같은 계통의 언어로 묶으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만큼 비슷한 점이 많다. 또한,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 바꾸는 것만으로도 문장으로서의 구색도 어느 정도 갖출 수 있어, 한국인으로서 입문하기에 쉽다고 알려진 언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같은 단어를 써놓고도 풍기는 의미가 상이하거나, 같은 의미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방법에서 차이가 나는 등, 소위 ‘웃고 들어가서 울고 나오는’ 언어이기도 하다.
이는 언어에 반영되는 사회와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는 문제이며, 또한 실제로 그 사회를 구성해본 경험이 없으면 알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함을 간과한 상태에서 오는 문제일 거라 생각한다. 교과서를 공부하고, 매체를 접하고, 여행 가는 것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장벽이다.
이 책에는 단순한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일본어를 넘어, 두 명의 필자가 일본의사국가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그리고 일본의 임상현장에 몸을 담그는 동안 접한 일본의료현장 및 그와 관련된 사회, 문화, 실상을 담아보려 애썼다.
동북아를 구성하는 작은 두 나라를 발판삼아, 세계 무대에 뻗어 나가 활약하는 의료인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말을 마친다.
서 동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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